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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 [재능퐁 기자단 3기] 최저임금은 무엇으로 사는가? 노동자의 변화
BY 한윤구2020.10.04 15:13:15
311870

#1

보치오니,<charge of lancer>

이제 노동이 시작되었다. 이전과 달리 점차 노동의 양태는 상당부분 불안전해졌다. 이들 노동자들은 이전의 인클로저 운동으로 도시로 몰려 왔고 이후 면섬유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이후 방직 산업과 방적 산업이 급격하게 팽창해나갔다. 그리고 이런 시장을 늘리기 위해 해외로 뻗어 나가면서 점차 식민지에서 원료를 수입해들어오면서도 식민지에 시장을 확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늘어나는 수요를 메우기 위해서 기계를 도입해가면서 발명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그러면서 동인도 회사 등을 창설하면서 이들의 착취구조는 더더욱 공고히하였다.

특히 이들은 아시아에 많은 주목을 두었다. 영국은 인도를 지배하였고, 프랑스는 동남아를 정복해나갔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당시 왕조 전쟁으로 급격히 무기 수준이 발달하였던 반면, 아시아는 청나라 중심으로 급격하게 무기 수준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에 조선 역시도 무기 수준이 떨어졌으며 일본은 아예 총포를 버리기에 이른다. 이런 무기 수준이 떨어진 데다가, 영국 역시도 증기 기관의 발전에 따라 급격히 무기 수준이 발달하였다.

실제로 당시 아편 전쟁에서 청은 대략 80만까지 군사를 모을 수 있었다. 다만 이들은 일단 태평천국군이 교통의 메카인 우한을 점령을 하느냐 마느냐가 문제였기 때문에 우한으로 병력을 빼버릴 필요가 있으며 증기선이 온갖 군데를 공격해들어오고 빠지기도 하였기 때문에 80만이 급격히 분산되어 배치되지 않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급격한 아시아의 붕괴를 초래했고, 이는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을 아주 높게 평가하였던 유럽인들에게 중국에 대한 인식 나아가 아시아에 대한 인식이 땅에 떨어지는 결과를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의 생산량은 40%에 달했고 (지금 미국이 23%) (이전의 송나라는 50%에 달하기까지 하며) 무굴제국은 25%에 달하므로 결코 무시할만한 국가는 아니라는 사실은 염두해두자.

#2

분채삼추도필통(粉彩三秋圖筆筒)

청(淸)대 건륭(乾隆)(1736~1795) 높이 15cm, 구경 19cm, 저경 18.7cm

이런 발명의 시대의 양면은 바로 노동의 시대였다. 여기서 노동은 식민지의 노동과 피식민지의 노동의 양태가 달라진다. 노동자들은 기본적으로 불안정했다. 홉스봄은 19세기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불안정성'을 꼽는다. 이 불안정성은 임금을 얼마나 받을지를 알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최저임금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주초에는 주말에 얼마를 들고 집으로 갈지 알 수가 없었다. 또한 어떤 사고나 병마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없었기 때문에 혹여 병이 걸리거나 사고가 난다면 그의 노동인생은 그것으로 끝이나고 곧 나락으로 빠지는 것이었다.

이런 노동자들의 불안정성은 이후의 농민들의 불안정성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고 홉스봄이 지적한다. 농민은 주기적으로 접근하는 기근 등에 대해 내맡기지만 그래도 앞으로의 삶에 대해 나름대로 안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철저히 불안정적이다. 그러니까 이제 장래를 걱정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게다가 나름대로 불황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불황이 오는 순간 모든 낙관적인 앞날에 급격한 암운을 드리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3

쿠르베, <파도>

홉스봄은 이런 불안정성을 진보와 자유에 대한 값이라고 말한다. 안정은 결코 자유로운 남녀들이 누리는 성질이 아니며 공무원이나 서번트와 같은 하인들이나 누릴 수 있는 것이 되고 말았다. 어느 시기보다 경쟁 불황 사기 등을 통해 희생물이 되기 쉬운 굉장히 불안정한 사회가 되었다.

물론 이런 불안정은 경제적 확장 시기에는 어느정도 경감이 가능했다. 물론, 60년대 후반에 결코 유럽의 실질임금이 전혀 상승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확장은 곧 일자리의 창출과 동의어였기 때문에, 이런 불안감을 어느정도 해소가 가능해졌다. 심지어 이런 불안감의 해소는 당시의 생계비의 급상승이나 58년 사회 전반에 내려 앉은 심각한 사회불안을 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은 산재해 있었다. 이전의 호황 속에서의 불안은 어느정도 경감이 가능하다 정도일 뿐이지 결코 이를 온전히 해소할 수는 없었다. 중산계급과 달리 노동자의 처지를 해소하는 것은 매우 험난한 일이었다. 이런 노동자들에게 있어서는 저축할 여력이 없어지며, 51년의 호황조차 당시 전계급 노동 가구의 52퍼센트는 궁핍선 이하의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40대부터 체력이 떨어짐에 따라 벌이의 능력이 감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노동자들의 삶은 급격히 궁핍해지곤 하였다.

#4

카이유보트,A Young Man at His Window, 1875

즉 19세기의 벨에포크 시대는 철저히 중산층의 시대였다. 노동자는 늘 불안에 휩싸이던 시기였고 이에 중산층만이 이 시기에 번영했다. 물론 이전의 귀족들의 미술이 점차 중산층으로 확장해나갈 수 있다는 커다란 장점을 가지지만 한편으로는 노동자는 철저히 배제되어가기 시작한 시점으로 점차 부르주아의 시대가 점차 시대를 장악해나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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