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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퐁 기자단 3기] 최저 임금은 무엇으로 사는가? 혁명 이후, 경제사- 노동자의 탄생
BY 한윤구2020.09.27 17: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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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퐁 기자단 3기] 최저 임금은 무엇으로 사는가? 혁명 이후, 경제사- 노동자의 탄생

프로파일 Lucida ・ 방금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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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네, <생 라자르 역>

혁명은 끝났다. 하지만 다른 혁명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바로 그 이름은 "산업혁명"이다. 이 혁명의 시작은 영국의 방직산업 그리고 방적 산업이지만, 프랑스는 워낙 정치적 형세가 복잡해서 이런 산업혁명의 흐름에 쉽게 편승하지 못했다. 그러나 외부로는 제국주의적 욕망과 내부적으론 산업 사회의 욕망이 서로 교차해가면서 점차 경제가 정치를 장악해 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정치적으로는 이제 이전의 자유주의적 면모에서 이제는 민주주의적 면모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제 점차 남성 중심의 보통선거가 등장해나가는데, 물론 이 시기는 그다지 보통선거라고 해서 결코 우리가 아는 4대 선거 원칙인 보통선거도 아니고, 평등선거도 아니도 직접선거도 아니고 비밀선거도 아니었다. 폴란드는 공개 선거였고, 여성 투표권은 여전히 보장되지 않았으며 간접선거를 하는 나라도 미국을 포함해서 수두룩했다.

#2

장택단,<청명상하도>

경제적으로는 이제 급격한 성장을 보인다. 물론, 아직 테일러가 근대적 공간을 규정하고 근대적 시간을 규정하고 완벽히 통제 상태에서의 컨베이어벨트식 생산은 아니다. 이런 생산은 1900년대 초에 들어서야 가능한 것이니. 하지만 이 시기는 이전보다 경제 성장률이 굉장히 높은 편이었다. 대략 1000년에서 1500년까지의 경제성장률은 서구의 1인당 GDP는 0.12%였다. (나머지 국가는 대략 0.04%) 그러다 16세기 상업혁명에 따라 0.14%로 증가하였고(그럼에도 여전히 농업의 숫자가 굉장히 많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18세기 말에 가서야 0.28%라는 기록적인 경제 성장률을 이루기 시작한다. 그러다 19세기 가면 50년간 1%라는 기적적인 성장률을 보인다.

이런 성장이 가능해지시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름대로 테일러주의까지로 나아가는 대량생산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대량생산의 시작을 통해서 성장을 가속화되었고, 기업 위험을 줄이기 위해 유한책임회사가 등장하며 제도 역시 중앙은행이 설립되었으며, 금본위제를 통해 세계 경제의 하나의 생산과 교환 시스템을 통해서 가능했다. 그러니까 이전의 근세적 경제 체제에서 본격적으로 근대적 경제 체제로 자리잡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시기는 생활수준이 아주 처참해졌는데, 아동노동이 만연화하고, 장시간 노동(일 16시간 노동), 열악한 노동환경을 자랑했다. 이 때문에 이에 반발하여 러다이트 운동이 벌어지고 마르크스의 이론이 점차 체계를 잡아가기 시작한다.

#3

모리스 드니,<성스러운 숲 속의 뮤즈>

그러나 이런 힘든 노동상황은 역설적으로 대불황이 다가오면서 점차 개선되었다. 이 대불황은 이전의 18세기 중후반에 불어 닥쳤는데, 사람들은 흔히 대공황을 최초의 공황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진정한 근대식 불황은 이 시기에 처음 시작했다. 이 1870년대 극초만 하더라도 불황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73년에 미국 철도회사가 급격한 파산을 맞이하였고, 독일 주가는 60%나 급감하였으며, 이민 역시 20만에서 6만으로 줄었다. 이에 훗날 이시기를 기록하면서 마음속에 불황이라는 말이 떠날 일이 없다고 적혀있다.

이 불황은 다소 세계적인 양상을 띠었는데, 이 대불황 이전에도 1857년 한차례 조그만 공황이 왔던 적이 있었는데, 이 시기는 미국에서 출발하여 북독일로 다시 스칸디나비아 반도로 이후 함부르크로 퍼져 나갔다고 기술한다. 이후 1873년 불황은 정반대로 빈에서 시작하여 미국으로 향했다. 그러면서도 여기서 괄목할 만한 것은 이제 농업의 불황이 더이상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최소한 서구에서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시작한다. 물론, 이전에도 이야기했듯이 동양은 현대에까지 농업이 간간히 공업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이시기부터 점차 그 영향을 줄어가는 것이다.

 

#4

마크 베커만,<밤>

이런 상황에서 점차 노동자라는 존재가 다시 발견되었다. 하지만 이 노동자는 처음에는 하나의 계급적 정체성을 가지기보단 새로운 존재로서만 등장하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들 노동자는 육체노동과 착취의 공통된 의식으로 단결할 여지를 항상 가졌으며 부르주아가 부를 축적해나가면서 점차 노동자와 부르주아 간의 간극이 점차 뚜렷해지면서 부르주아의 사다리 걷어차기는 점차 심화되어갔다. 이런 공통적인 생활 스타일을 통해서 점차 점차 단결의식이 뚜렷해졌고 이중 의식이 가장 강한 자들은 인터내셔널을 지지하고 사회주의자로 변모하기도 하였다.

이런 단결 의식이 뚜렷해지는 동시에 점차 노동자 역시 내부적인 분화를 이루어나가는데, 노동자와 빈민이 처음으로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19세기 중반 체면이라는 중간 계급의 가치관과 기준이 노동자 전반에 침투해들어가면서 중간계급과 섞여들어가기도 하였다. 그래서 노동자 역시도 때로는 중간계급을 따라하고자 노력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이들은 이전의 단결성 뿐 아니라 빈곤에 대해 벗어날 수 있다는 환상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그 결과 노동 귀족과 함께 "존경받는 노동자"가 탄생하기도 하였고, 한편으로는 단결하는 모습이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가 분화해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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