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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퐁 기자단] 최저임금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림과 홉스봄으로 알아보는 알바와 고난의 행군 5편- 프랑스 혁명 마무리!!!, 프랑스 혁명에 대한 두가지 시선
BY 한윤구2020.09.06 15:4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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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클로드 모네, <기(旗)로 장식된 몽토르귀유 거리>, 1878년

지난 시간에 갑자기 필자 신변에 문제가 생겨서 일주일은 미루어야만 했다. 그래서 오늘에야 다시 이를 집필할 수 있게 되어서 글을 올린다. 지난 시간은 주로 농업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였다. 이 근대화 과정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작지 않다는 것과 함께 농업이 근대화의 토대가 된다는 것을 아주 장황하게 살폈다. 이렇게 길게 설명한 것은 사람들이 자주 이를 놓치곤 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드디어 이제 프랑스 혁명에 대한 끝 마무리를 해나갈 생각이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두 가지 시선을 설명하면서 기존의 전통적인 견해로서 마르크스적 이론을 다른 하나는 마르크스주의적 접근을 해체하고 수정주의적 입장을 설명할 예정이다. 원래는 프랑스 혁명에 대해 굉장히 많은 이론들이 있지만 이 둘이 상당히 중요하고 특히 수정주의적 입장은 사람들이 잘 모르니 조금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술한다

#2

쿠르베, 안녕하세요 쿠르베씨?

수정주의 입장에서 보기 전에 가장 전통적인 견해인 마르크스 이론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는 프랑스 혁명에 대해 본격적인 해석을 시작한 사람은 아니지만 많은 다수설을 내놓은 근대와 포스트근대의 디딤돌을 만들어낸 사람이다. 그는 프랑스혁명을 보고서 일종의 발전사관에 입각해서 서술한다. 이 서술은 앞서서 필자가 프랑스 혁명을 위해 차용한 방식으로 상당히 익숙한 해석이다. 구체제 하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발전함에 따라 산업부르주아가 부상하였고 그 결과 낡은 생산양식의 담당자, 구사회의 지배계급인 봉건적 특권귀족과의 계급투쟁을 벌여야만 했다고 마르크스는 설명한다. 그렇게 프랑스 혁명을 산업부르주아의 봉건귀족에 대한 공격으로서 상당한 성공을 거둔 사건으로 평가한다. 즉 마르크스는 19 세기를 고도로 발전한 산업사회로 인식하였고, 과학적, 사회적, 자코뱅적인 관점에서 프랑스 혁명을 해석하여, 부르주아의 혁명이자 자유주의적 혁명이자 사회적 혁명으로 본다.

하지만 이 관점은 다소 문제가 있다. 이시기가 과연 산업부르주아적인 혁명을 일으킬 정도로 산업부르주아가 형성되었느냐라는 움직임과 함께 아주 근원적인 문제인 과연 프랑스 혁명을 하나의 진보라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그래서 1960년대 기존의 근대에 대한 환성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이제 프랑스 혁명에 대한 대대적인 재해석이 진행되어가면서 이에 대한 반론으로서 수정주의적인 입장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3

송 휘종, 서학도

그렇다면 그놈의 수정주의는 무엇인가. 사실 앞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나는 딱히 수정주의적인 입장을 취한 것은 아니다. 엄연히 노동을 향한(잊지 말 것이 나는 어디까지나 노동에 관한 이야기로 나아가는 것이 일종의 목표이다.) 장대한 서사를 구축하는 것이 이 재능퐁 기자단으로서 나의 임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엄연히 마르크스적인 입장에서 혁명을 바라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만 끝나버리면 이는 상당히 편협할 수 있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에 대한 다른 기술 역시 남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남긴다. 우선 ) 수정주의적 해석은 앞서 이야기한 바대로 1950,60년대 등장하였는데, 18C 프랑스를 단순히 귀족만으로 운영되는 제도로서의 봉건제도로 볼 수 없으며 귀족과 부르주아가 단순히 분열된 존재가 아닌 일치된 이해관계를 지니고 있으며 부르주아 역시 단순히 자본주의를 지배하지도 못했을 뿐아니라 경제에서 결코 귀족을 능가하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또한 당시 프랑스를 단순히 산업브루주아의 시대로 보기도 어려운 것이 엄연히 산업혁명은 19세기 중반에서야 시작되었던 것이며 인구의 89%가 농업에 종사하였고, 공업도 대부분 농촌에 기반 둔 전통적 소규모의 작업일 뿐 아니라 공장경영의 경우에는 되려 귀족들이 많이 진행하였다고 본다.

더구나 삼부회의 주도권을 쥔 제3신분 의원들의 직업은 산업부르주아가 아닌 관직(43%), 법조인(25%), 상업·공업·금융업(13%)으로 산업 부르주아가 주도권 장악하지도 못했을 뿐아니라 오히려 토지부르주아(관직,법조인)집단이 구체제의 특권장치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개조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는가 하는 의문이 던져졌다. 따라서 프랑스혁명은 민중으로부터의 혁명이 아닌 철저히 엘리트 중심의 혁명으로 진보적·자유주의적 귀족층이 부르주아 상류층 엘리트와 함께 개혁적 타협을 진행하려다가 토지·식량문제에 천착한 도시대중과 농민대중의 예기치 못한 난입으로 대혁명이 급진화하면서 다소 극적인 반전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일반적으로 로베스피에르의 자코뱅파가 민중들의 요구를 이룬 것으로 인식하지만, 최근의 연구에는 자코뱅과 상퀼로트(민중)의 구분할 피요가 있으며, 자코뱅은 철저히 민중을 이용하는 것으로 반혁명 연합군에 패배를 하자, 혁명파는 지롱드당 및 봉건세력 미리 숙청하고자 하였으며, 민중들은 이에 철저한 도구화되는 동시에 부르주아 지배를 동요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용당해왔다. 그렇게 국민공회의 선언에서 모든 재산권의 유지는 영원하다는 선언 그리고 1793. 3 법령: 농지법 및 토지·상업·산업적 소유를 전복시키는 주장하는 자 사형이라는 법령을 통해 부르주아는 철저히 정권을 장악해 갔으며, 이에 따라 민중을 철저히 이용하면서도 동시에 권력을 장악 한 뒤에는 민중을 배제하고 권력을 독점해 나가는 결과를 만들어 내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19 세기 프랑스 사회는 민주공화정에서 부르주아 과두정 그리고 다시 제정·군주정으로 반복의 역사를 가지게 된다.

#4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 <거리, 드레스덴>

그렇게 오늘은 프랑스 혁명에 대한 자세한 기술을 통해서 잠시 프랑스 혁명에 관한 장대한 서사를 끝맞추었다. 이후 필자는 노동자들에 대한 근대적인 삶에 대해서 기술할 예정인데 이에 앞서서 다음 주에는 재능퐁에서 요청한 대로 나름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하는 식으로 머리를 식힌 뒤에 노동자의 삶에 대해 기술할 생각이니 모두들 기대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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